검역주권,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인가. 광우병 논란에 부쳐...
한국인 된 한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끔찍한 경험이지만,
국가의 사회적 공간, 공간 계획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화. 단순한 이데올로기로 보건, 현실을 구성하는 담론으로 보건, 물질적 실체로 보건 지난 30여 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회자되는 말임에는 분명하다. 많은 학자들이 세계화와 국가의 쇠퇴, 네트워크의 문제, 도시와 지역의 재정의 등으로 논란을 거듭했다.
하지만 10 여 년 전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세계화는 근대국민국가의 퇴조라는 문제 설정과 동일한 말로 여겨졌다.

그러나 수 년 전부터 세계화에 있어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 나아가서 다른 공간적 규모들 - 이를테면 지역 규모, 로컬 규모, 글로벌 규모 - 과는 다른 제도적 특징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공간연구 분야에서는 세계화가 근대적인 개념으로서 국민국가의 사회적 공간을 질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능동적인 공간 변형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등장했다. 여기에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국가의 귀환'이라는 상당히 의미있는 흐름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의 도도한 흐름은 국가의 귀환을 넘어서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가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국민국가의 자기 선언이라고 해야할까. "검역주권"이라는 프레임이 이토록 강력한 집합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세계화 시대에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재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먹거리를 주요한 제품으로 삼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로 부터 국민국가 단위가 여전히 유효한 대응무기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세계화된 시장경제라는 이념형에 맡겨둘 경우 GMO만큼 경제적으로 타당한 제품이 어디있겠는가. 그러나 국민국가의 작동논리는 이 경제적 타당성을 무(無)로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재 한국의 촛불집회가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국가공간은 세계적 경제공간과는 다른 논리로 성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비단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도시나 지역 공간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심화시켜 웰빙과 건강권의 문제를 영역화된 권리, 혹은 공동체적 가치로 구성해 볼 여지가 생긴듯하다.

지난 한 달 여 한국사회의 모습은 그야말로 세계화에 역행하는 모습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논리에서 세계화는 현실을 재단하려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현재 우리보다 더 이른 시기에 세계화라는 작업을 진행한 여러 나라들에서 "real globalizations", 그러니까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화을 논의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세계화 자체를 거부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화의 구체적인 모습은 그 나라가 처한 환경과 제도, 역사와 문화, 구체적인 권력관계가 만들어내는 가능성이다.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하며 전국을 떠돌고 있는 검역주권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세계화의 한 가지 모델이지 않을까. 이제는 "세계화 찬성", "세계화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세계화가 무엇인지, 거기서 국가는 어떤 모습인지를 논해야 할 때다. 현재 우리 사회를 강타한 미국 쇠고기 수입문제와 이를 둘러싼 검역주권 논란이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일 것이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천하한량 | 2008/06/22 15:03 | Academia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hallyang.egloos.com/tb/443925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